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케니 로프턴 (문단 편집) === 프로 시절 === 그렇지만 대학교 시절 보여준 퍼포먼스와는 별개로 로프턴은 NBA 스카우터들에게 별로 선호받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80에 불과한 작은 키가 결정적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포인트가드]]로서 로프턴이 보여준 순발력과 스피드에 주목한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그를 드래프트에서 지명하면서 로프턴의 야구 경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대학교 내내 5타석에만 들어섰을 만큼 야구에는 손을 놓고 농구만 했으니, 당연히 실력이 늘어났을 리가 없고 첫 마이너리그 시즌에 타율 .214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한다. 그래도 스피드는 어디 안가서 꼴랑 48경기 뛰고 도루는 무려 26개를 기록했다. 이후 차차 야구에 적응해 나가면서 성적이 급등해나갔고, 마침내 1991년 9월 확장 로스터를 통하여 로프턴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스티브 핀리]]와 [[크레이그 비지오]]라는 테이블 세터진을 보유한 애스트로스에게 로프턴은 말 그대로 잉여 자원일 뿐이었고 1991 시즌의 종료와 동시에 로프턴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1992 시즌, 애스트로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로프턴은 제대로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타율 0.282에 5홈런 48타점 '''66도루'''를 기록했던 것. 로프턴의 타고난 주루 능력에 힘껏 고무된 클리블랜드 프런트는 1992 시즌 종료 후 4년간 총액 630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상당한 거액의 계약을 그에게 선사한다. 1993 시즌에도 타율 0.329, 70도루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능력이 [[플루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데 이어, 1994 시즌에는 0.349의 타율로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을 차지한다. 1995 시즌 역시 3할대의 타율과 54도루를 기록하면서 팀을 [[1995년 월드 시리즈|WS]]로 이끌지만 전성기의 [[그렉 매덕스]]와 [[톰 글래빈]]이 이끄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무르게 된다.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케니 로프턴은 연평균 타율 .316, 8홈런, 52타점 '''65도루'''라는 스탯을 찍으면서 리그를 대표하는 테이블세터로 자리매김하였으며, 클리블랜드 팬들에게 로프턴은 팀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1994년 로프턴은 112경기 523타석/459타수 160안타 106득점 60도루 52BB/56K라는 성적에 .349/.412/.536 .948OPS라는 웬만한 슬러거들이나 찍는 비율 스탯을 기록하며 대활약했다. 하지만 1996 시즌 종료 후 클리블랜드는 [[마퀴스 그리솜]]과 [[데이비드 저스티스]]를 받는 조건으로 로프턴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한다. '트레이드는 야구에서 늘 일어나는 것'이라며 애써 덤덤한 반응을 보였던 로프턴이었지만 나름 충격적인 트레이드였는지 1997 시즌에는 47번 도루 시도 가운데 27번만 성공하는, 평소 그답지 않은 주루 플레이를 선보인다. 다행히도 타격이나 수비 능력은 클리블랜드에서 보여준 그 모습 그대로였다. 1997 시즌 종료 이후 로프턴은 [[FA 제도|FA]] 자격을 획득한 로프턴은 무수한 팀들의 구애 가운데 사랑하는 친정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의 복귀를 선언한다. 3년간 총액 2400만불의 계약. 하지만 30줄에 접어든 로프턴의 성적은 해가 갈수록 하향세를 그렸고 2001시즌에는 타율 .261, 16도루를 기록하면서 메이저리그 풀타임 출전 이후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2001 시즌 종료 후 클리블랜드를 떠나면서 로프턴의 본격적인 저니맨 행보가 시작된다. 2002 시즌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계약을 맺고 백업 외야수로 활동하던 중,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됐고 샌프와 함께 드디어 생애 첫 월드시리즈 반지를 차지해보나 했는데... [[2002 월드 시리즈|또 한번 콩라인에 그치고 만다.]] 시즌 종료후 [[피츠버그 파이러츠]]와 계약을 맺었지만 전년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더스티 베이커|빵감독]]의 구애로 다시 [[시카고 컵스]]로 트레이드. 그리고 이번에도 [[2003 NLCS|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다. 2002년 월드 시리즈, 2003년 NLCS 대역전극의 제물이 됐던 것이 몹시도 억울했던 건지 2004년에는 [[뉴욕 양키스|악의 제국]]으로의 이적을 감행하는데... 마치 운명의 장난에라도 걸린 듯이 다시 한번 [[2004 ALCS|대역전극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고 만다. 2005년과 2006년에는 회춘해서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각각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지만, 이 때도 우승반지 획득에는 실패했다. 2005 필리스는 2게임 차이로 와일드카드 획득에 실패했으며 2006 다저스는 NLDS에서 메츠에게 3-0 떡실신을 당한다. 2007년에도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나이를 거꾸로 먹은 듯한 활약을 선보여주던 중, 친정팀 클리블랜드로 다시 한 번 트레이드 된다. 불혹에 이른 2007 시즌, 로프턴은 타율 0.296, 7홈런, 38타점, 23도루로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시즌 종료 후 다시 FA가 된 그를 필요로 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은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로프턴은 이 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커리어 통산 기록은 타-출-장 .299 - .372 - .423에 2428안타 130홈런 622도루, 781타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